모니터 공책
너의 즐거움
술로 기분이 좋아진 친구는 제 볼이 빨간 사진을 올리며 즐거워했다. 쌀알만한 버튼에서부터 손바닥만한 화면에까지 즐거움이 잔뜩 묻었다. 요즘 같은 시대에야 흔하디 흔한 작은 철덩어리는 작은 보석상자가 되었다. 손 안의 철덩어리가 보석담긴 상자로 변하는 마법은, 취한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일어나는구나. 요즘 같은 시대에야 마법이 흔하디 흔한 일이다. 전파를 탄 즐거움이 술냄새처럼 떠다니는 밤이다.
글서랍
2016. 6. 25. 20:57
잠을 기다리며
백색소음을 반주로 깔고 풍경처럼 보이는 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. 묽은 먹빛이 엷게 벽지 위에 넘실거릴 때 그 여린 색을 조용히 오래도록 바라본다.먹빛에 마음이 부실 때, 어둠도 빛깔이구나 싶다.
글서랍
2015. 5. 19. 19:09
백수 초기의 새벽
곧 아침 햇볕이 벽지를 물들일 새벽, 잠들기 직전이 되면 관념과 도덕의 경계가 모호해진다. 내 인생에서 배워 온 옳고 그름. 그 모든 것에 대한 의문으로 눈을 감아도 무엇을 보고 있는 듯한 산란함을 느끼다 잠드는 하루는, 이제 여러 날이 되어가고 있다. 반복의 반복인 날들이 거듭되면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관념들은 발자국으로 지워지는 금처럼 날로 흐릿해졌다. 모든 개념이 부서질 때, 감은 눈 속에서 끝을 모르는 이미지와 문장들이 난잡하게 얼그러졌다. 나의 정신은 낡은 갱지처럼 바수어졌다. 눈을 떠 창 밖을 내다보면, 먼지 섞인 안개에 뒤덮힌 길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. 백색소음이 아늑한 내 방을 채웠고,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의 차소리같은 것을 들으며 얄팍하지만 늪같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.
글서랍
2015. 5. 19. 18:49